Ⅰ. 서설(緖說)
일본국헌법은 국민주권의 원리에 입각한 헌법이지만, 제1장에서는 「천황」(天皇)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일본국헌법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국민주권의 원리 하에서 천황은 어떠한 근거와 지위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이른바 상징천황제가 이전의 메이지 헌법에서의 천황의 지위와 어떠한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의 천황제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쟁점은 무엇인가를 짧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1. 일본국헌법과 천황
메이지 헌법 시대의 천황의 지위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 천조대신)의 의사, 즉 이른바 신칙(神勅)에 따른 「천양무궁(天壤無窮:하늘과 땅처럼 무궁함)」한 것이었다. 즉 일본(메이지 헌법 시대)은 이러한 신칙을 받은 만세일계(萬世一係)의 천황(메이지 §1)이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總攬)」(메이지 §4)하는 천황주권의 국가인 것이다. 또한 메이지 헌법이 있다고 하여 천황의 통치권은 그러한 헌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천양무궁(天壤無窮:하늘과 땅처럼 무궁함)의 광모(宏謨:큰 뜻)에 따라 유신(惟神:신령)의 보조(寶祚:보위)를 승계」(메이지 고문)한 것으로서 「조종(朝宗)에게서 이어받아 이를 자손에게 전하는」(메이지 상유), 즉 천황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다. 즉 메이지 헌법은 천황이 그 권리를 헌법에 따라 행사하기로 약속하는 문서에 지나지 않는다1. 이러한 천황은 “신성하여 범할 수” 없는 존재(메이지 §3)이며, 이러한 천황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는 형법(1947년(쇼와 22년) 법124호에 의하여 개정되기 이전의 구 형법 74조)상의 불경죄(不敬罪)로 중한 처벌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황실(皇室)에 관한 사항은 입법으로 정하는 사항이 아니라 별도의 체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황실의 사항과 황위계승에 대하여 규정한 황실전범이 헌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하여 일본국헌법 시행 이후의 천황의 지위는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 것이다(§1). 이는 포츠담 선언의 수락 이후 국내적으로는 천황 중심의 통치체제에 근본적인 변혁을 더하려는 의도와 함께, 국외적으로는 천황의 전쟁책임을 물으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천황을 전범으로 재판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높아지면서 일본 정부측의 이른바 국체(國體)를 호지(護持)하려는 강한 움직임에 따라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점령정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천황제 존속과 함께 천황제 존속을 위하여 천황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변경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고안한 것이다. 여기서 맥아더는 천황제 존속의 결단과 함께 천황을 상징으로 하여 그 지위를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바탕한 것으로 구하고 있다. 이는 일본 정부측이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원칙에 대하여 저항하면서도 결국 천황제의 존속과 함께 이를 받아들이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이후 천황은 「인간선언」을 발표하여 천황의 신격성을 부정하였고, 이후 불경죄도 폐지되어 현재 헌법에서는 천황을 신의 자손으로 특별히 대우하는 례는 없다.
인간선언
쇼와 천황은 1946년 1월 1일에 장문의 조서를 발표하였는데, 그 가운데 다음 부분을 이른바 「인간선언」이라고 한다.
쇼와 천황은 조서에서 천황이 신인 것을 부정하고 있지만, 그 선조나 역대 천황의 신격에 대하여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를 두고 신헌법(일본국헌법)의 시행에 따른 체제가 새로운 변화가 아니라 「5개조의 어서문」2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힘이 조서의 주목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쇼와 천황은 1946년 1월 1일에 장문의 조서를 발표하였는데, 그 가운데 다음 부분을 이른바 「인간선언」이라고 한다.
짐과 너희들 국민과의 사이의 유대는 종시(終始) 상호의 신뢰와 경애에 의하여 맺어져, 단순히 신화와 전설에 따라 생긴 것이 아니다. 천황을 마치 현어신(現御神)과 같이 하고 또한 일본국민을 마치 다른 민족에 우월한 민족이라고 하고, 모든 세계를 지배할 운명을 가진 것과 같은 가공의 관념에 기초로 할 것도 아니다.
쇼와 천황은 조서에서 천황이 신인 것을 부정하고 있지만, 그 선조나 역대 천황의 신격에 대하여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를 두고 신헌법(일본국헌법)의 시행에 따른 체제가 새로운 변화가 아니라 「5개조의 어서문」2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힘이 조서의 주목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2. 일본국헌법에서의 천황의 지위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다.」고 규정한 헌법 1조는 국민주권의 원칙 아래에서 천황의 특수한 헌법상의 지위를 선명(宣明)하고 있다.3 상징천황제 도입의 의도가 메이지 헌법에서의 천황제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상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의미에 대해서는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 천황이 「상징」이라는 의미에서 어떠한 지위를 갖는지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다.
1) 상징의 의미
일반적인 의미의 상징은 무형의 추상적인 어떤 것을 구체적인 물상(物象)을 통하여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상징이라는 개념을 법적 개념으로 이끌어 오는 일례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헌장(Statute of Westminster, 1931년)의 전문(前文)에서는 「국왕4은 영연방을 구성하는 나라의 자유로운 결합의 상징이며, 이들 구성국은 국왕에 대하여 공통의 충성에 따라 통합된다.」고 정하고 있다. 또한 스페인 헌법 제56조도 "국왕은 나라의 원수(元首)이며, 나라의 통일 및 영속성(永續性)의 상징이다."라고 정하고 있다.5
헌법이 천황을 상징이라고 규정한 것은 천황을 헌법의 통치기구 가운데 상징으로서 취급하는 것을 법적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국」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규정에 대하여 천황이 「일본국의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천황의 상징성을 가지고 대외적인 면에서 주목하여 국가로서의 일본을 체현하는 것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대내적인 의미에서 국민의 통합체를 상징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또한 양자를 구별하면서 후자를 중시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의 통합」은 「국가」이며, 「일본국」은 「일본 국민의 통합」이므로 상징의 작용에 관한 한에서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견해도 있으며, 단지 상징의 「물적 요소」와 「인적 요소」의 차이에서 생기는 뉘앙스의 차이라고도 한다.6 사견으로는 양자를 특별히 구별하는 의의는 크게 없다고 본다.7
2) 상징으로서의 지위
상징이라는 것에 대하여 상징이 지위라는 견해와 기능이라는 견해, 지위이며 또한 상징으로서의 기능을 기대하고 있다는 두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하여 종래에는 상징이라는 것은 지위이지만, 그것은 천황이라고 하는 국가기관의 지위가 아니라 천황이라는 인간의 지위라고 해석해왔다. 즉 천황은 헌법이 정하는 국사행위를 행할 때만이 아니라 그 사적(私的) 생활에 있어서도 상징이라고 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8
3) 천황이 상징이라는 것의 의미
일단 군주제 국가에서 군주는 원래 상징이라고 하는 지위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 메이지 헌법에서도 천황은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에서는 통치권의 총람자로서의 지위가 전면에 드러나 있으므로 상징으로서의 지위는 배후에 숨어있다. 일본국헌법에서는 통치권의 총람자로서의 지위를 부정하면서 국정에 관한 권능도 부여하지 않은 결과, 상징으로서의 지위가 전면에 드러나게 되었다. 또한 헌법 1조의 상징천황제는 천황이 일본국의 상징인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천황이 일본국의 상징인 역할 이외의 역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9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천황이 「상징」이라고 하는 사회적 사실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는 규범적 요구도 포함한다는 견해가 있다. 즉 헌법 1조는 천황과 상징의 관계에 대하여 「일면에 있어서 국민이 천황을 상징으로 본다고 상정(想定)하고, 다른 면에서 그를 기대하는 규정」10이라는 것이다. 또한 심리상의 효과와 법제상의 효과가 있다고 지적하며, 천황이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에서 사회심리의 법적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상징」이라는 것은 물상(物象)이 아니라 인격이므로, 그 지위에 있는 자는 그에 따르는 행동이 요청된다고도 한다.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천황이라는 인간에 대하여 일본국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 보는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상징」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호적(記號的) 상징」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이는 메이지 헌법에서의 천황의 「권위상징성」(權威象徵性)을 철저히 부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외에도 「상징」의 법규범성에 회의(懷疑)를 가지고 「상징」은 천황에 관한 규정 전체를 관통하는 일정한 원칙이며, 전제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4) 지위의 근거 : 「국민의 총의」
3. 천황의 군주성(君主性)
1) 개관(槪觀)
메이지 헌법에서 천황은 군주이며, 당시의 일본이 군주국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행 헌법에서의 천황은 세습, 신성불가침, 통치권의 총람, 강대한 대권 등의 여러 변화한 부분을 볼 때에 「전통적인 군주의 개념」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일본국헌법은 세습의 상징천황제를 존치하면서도 통치권의 총람자로서의 지위를 없애고, 그 국가기구로서의 권한을 일정한 국사행위에 한정하여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주권자도 아니고 정치적 실권도 갖지 않는 천황을 「군주」(君主)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일본은 「군주국」인가 「공화국」인가 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이러한 점은 군주의 개념이 명확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국왕권한의 축소화와 군주제도 그 자체의 다양화라는 세계사적인 조류 가운데에서 오늘날 군주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2) 논란의 성격
군주의 권한이 형해화되는 것과 함께 군주제의 공화제화, 대통령 또는 수상의 권한 강화에 의한 공화제의 군주제화 현상이 나타나는 오늘날, 군주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중요성을 잃었으며 또한 그에 의한 분류는 무의미하다고 하는 견해가 강해져 왔다.11
그러나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이란국왕에게 “일본도 귀국과 같은 군주제 나라이다.”라고 발언한 것이 야당을 자극하여 국회에서 격한 논쟁을 낳은 것처럼 군주라는 말의 가치적 측면은 천황이나 일본의 헌법체제에 대하여 국민의 정신적 태도에서 어떠한 종류의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오늘날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가 국가구조에서 왕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특별한 지위와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나라는 대통령이 없고, 혈통에 따른 「국왕」을 존치하여 정치적인 의미를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있는 이상 군주 및 군주국의 개념을 정리하고 분류하여 이를 국왕이 없는 순수한 공화국과 구분하여, 이들 나라의 국왕 및 그 제도를 각각의 전체 헌법체계 가운데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분석·검토하는 것이 국법학이나 비교헌법학에서의 의미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12
3) 전통적인 「군주」의 개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국가형태를 결정하는 원칙으로 현실에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의 숫자에 따라 군주제와 귀족제, 민주제로 나누었다. 이어 16세기 초반에 마키아벨리는 고전적인 3분설을 단순화하여 1인 지배의 군주제와 2인 이상이 지배하는 공화제로 크게 분리하였다. 국가형태론에 있어 전통적인 그리스의 방법은 정치적·사회적 시점에 따라 본 실력적·권력적 계기를 중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함께 법률적 주권의 소재에 따라 국가형태를 분류하려고 시도한 것이 16세기 후반에 활약한 보댕(Jean Bodin)이었다. 그는 국가형태를 법률적 주권의 소재를 기준으로 하여 주권이 한 사람에게 있는 군주제, 소수에게 있는 귀족제, 다수에게 있는 민주제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그리스 이래의 전통적 계보에 서서 국가형태론을 정치(精緻)한 법리론의 위에 구성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친 독일 국법학이었다. 이 시기에 있어서 독일 국법학을 대표하는 옐리네크는 「국가의사형성의 방법」이라고 하는 하나의 표준에서 국가를 움직이는 최고의 의사가 헌법상·심리적·자연적인 방법에 의하여 형성되었는가, 또는 법률적·기술적인 방법에 의하여 형성되었는가에 따라 국가를 군주국과 공화국으로 분류하였다. 그는 또한 「군주국이란 하나의 자연적 의사에 따라 지도되는 국가이다. 그 의사는 법적으로는 최고의 것이며, 또한 다른 어떠한 의사에도 전래되지 않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13고 하였다.
독일 국법학의 강한 영향을 받은 메이지 헌법하의 일본의 헌법학, 국법학은 호즈미 야쓰카(穂積八束) 박사 이래 일반적으로 주권자가 누군가 하는 점에 따라 국가의 정치형태를 국체로 하고, 그를 주권자가 1인의 군주국체와 2인 이상의 공화국체로 분류하여 그 양자가 또한 주권자가 어떠한 방법으로 주권을 행사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정치형태, 즉 정체를 여러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14 또한 이러한 국체와 정체의 구별을 하지 않고, 군주정(체)의 개념을 전통적 입장에서 구성하는 학자도 메이지 헌법 시대 이래 적게나마 존재한다.15
이처럼 분명하듯이 군주의 개념은 국가형태의 분류에 따라 부수적으로 구성되어 왔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국가형태론에 공통되는 것은 국가형태의 분류 기준으로 권력의 보유자, 지배자, 주권자, 최고권력자 등 여러가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이른바 국가의 최고통치권력자(주권자)의 수가 한 사람인가, 두 사람 이상인가가 사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전통적 개념으로서 군주국은 주권자가 1인인 국가를 말하며, 군주는 국가에 있어서 주권을 혼자 가지는 자연인이라는 것에 귀착된다. 오직 이러한 개념규정을 가지고 통일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여기서 쓰이는 주권없는 주권자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구성하는가에 따라 앞의 통일적으로 표현된 군주 개념에서도 다양한 색채가 존재하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4) 새로운 「군주」의 개념
주권자가 특정한 한 사람(군주)인 국가를 군주국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 이래의 전통적 견해였다. 그러던 것이 미국 여러 주의 헌법이나 프랑스 혁명 등의 영향에 의해 국민주권주의가 발달하고, 한편으로는 종래의 군주국에서 헌법전상 국민주권을 선언하고 내외의 정치사정에서 종래의 왕가의 존속을 인정하고 그에 특별한 지위를 보장하여 행정권등의 제권한을 주는 나라가 많아졌다. 더욱이 그러한 국민주권선언국의 다수는 그 헌법에서 자국이 군주제국가라는 것을 시사(示唆)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헌법상 또한 군주주건의 건전(健全)은 유지하면서도 헌법적 관습에 따라 최고통치권력이 실질적으로는 국회에 주어져 있는 국가가 출현했다. 사회현상으로는 새로운 군주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한 사태를 두고 국가형태론에서 군주국 내지 군주의 개념은 더욱 다양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크게 나누면 두 종류의 견해가 존재한다. (가) 주권을 1인이 가지는 자연인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군주의 개념을 유지하는 견해, (나) 주권자인가 아닌가하는 기준을 버리고, 새로운 기준에서 군주 개념을 정립하는 견해.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상세히 나누면 다음의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가) -1. 주권의 개념을 이념적 정당성의 계기에 중심을 두고 구성하는 견해. 이 입장에 따르면 국민주권을 헌법상 선언한 국가에 있어서 국왕은 가령 어떠한 큰 권한을 부여하더라도 군주라고 할 수는 없다.
(가) -2. 주권개념을 권력성의 계기에 중심을 두고 구성하는 견해. 이 입장에 따르면 국민주권선언국의 국왕도 헌법상 국왕이 국가의 최고권력자, 즉 실질상의 주권자로 볼 권한을 가진 경우에는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이 견해는 ① 옐리네크와 같이 헌법전상 국왕이 다음의 권한을 갖는 경우, 가령 헌법적 관습에 따른 실권이 국회에 옮겨가더라도 또한 그를 군주라고 할 수 있다는 견해16와 ② 보른하크와 같이 헌법적 관습에 따라 의원내각제가 성립한 국가는 군주는 실질상의 주권자가 아니므로 입헌군주국이 아니며, 공화국의 한 유형이라고 하는 견해17로 나뉜다.
(나)의 새로운 견해를 취하는 학자는 주권을 가진 군주는 물론, 주권자가 아닌 군주의 존재도 긍정한다. 그리고 군주의 표식으로 보통 (1) 독임제 기관일 것, (2) 지위취득원인의 일반국민과는 다른 신분을 가지고, 또한 많은 경우 그 지위가 세습되며 (3) 지위의 종신성 (4) 무답책(無答責)의 보장 (5) 그 지위에 대한 국민 일반의 숭경적(崇敬的) 감정의 존재, 그에 따르는 국가적 상징성의 구유(具有)를 들고 있지만, 국정상의 실질적 권능을 군주의 표식으로 드는가에 관하여는 다음의 견해로 나뉜다.
(나) -1. 군주의 표식으로 앞의 다섯 가지뿐만 아니라 (6) 통치권의 중요한 부분, 적어도 행정권을 가지고 있을 것과 (7)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자격을 가지고 있을 것을 드는 견해18
(나) -2. 앞의 (6)과 (7)은 모두 문제가 되지 않고, 형식적·의례적 권능이 있다면 충분하다는 견해19
5) 천황은 「군주」인가
결국 실질적으로 천황이 군주인가 하는 문제에서 (나) -2.의 견해는 가장 넓은 군주개념을 구성하여, 헌법상 천황은 군주이며 일본은 군주국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견해에서는 천황을 군주로 보지 않으며, 일본은 공화국이라고 한다.
사견으로는 천황을 군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현행 일본국헌법 성립 이후 55년 체제가 성립하고, 또한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성립된 보수정권 하에서 성립된 헌법적인 관행들, 이를테면 내각총리대신이나 다른 국무대신이 외국출장 전후에 천황에게 보고한다거나, 여러 가지 국사행위에 대하여 국무대신이 연락과 함께 소관의 행정 사항에 대하여 천황에게 보고하는 이른바 「내주」(內奏)와 같은 관행들을 고려할 때에 보수적인 헌법의 운용에 대한 문제는 별론으로 하되 이러한 관행이 이미 성립되었으므로 이를 전면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20
또한 그 신분적으로도 일본국헌법도 인정하듯이 천황은 신분상으로 국민과 구별되는 「군주」 이외의 무엇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천황이 군주가 아닌 국가기관으로서 단순히 공무원이라면 그 지위를 세습하고(§2) 그 가족의 재산이 국가에 속하는데(§88, 「모든 황실 재산은 국가에 속한다. 모든 황실의 비용은 예산에 계상하여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국민주권이라고 하여 이를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헌법이 스스로 신분적인 차별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무원과는 분명히 별격(別格)의 국가기관인 것이다.21 일본국헌법 제99조는 「천황 또는 섭정 및 국무대신, 국회의원, 재판관 기타의 공무원은 이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천황 또는 섭정과 그 외의 국무대신 등을 구별하고 있다. 그리고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견해는 없으며, 민사에서도 천황을 피고로 하는 경우에 최고재판소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것에 비추어 보면, 천황에게는 민사재판권이 미치지 않는 것으로 풀이함이 상당하다.」22고 판결하였다.
군주의 위치는 역사적으로 변화하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국가라 할지라도 1831년 이래의 벨기에와 같이 군주가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그 군주의 권능이 명목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지라도 그러한 권능이 헌법적으로 부여되어 있는 이상 군주라고 보는 것이 해석상 타당할 것이다.23
이와 관련하여 마쓰이 시게노리 교수는 군주에 대한 개념정의에 대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천황은 영국의 국왕과 달리 헌법상 정치적 권력을 부여받고 있지 않다. 게다가 본질적인 문제는 천황이 군주인가 하는 논의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이다. 일본국헌법은 천황을 군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헌법상 상징으로서의 지위밖에 가지지 않으며 국정에 관한 권능을 일절 갖지 않는 천황을 군주로 부르는 것은 분명 곤란하다. 천황은 군주가 아니며, 일본에서는 군주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일본은 공화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24라고 하여 군주가 아니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4. 천황의 원수성
1) 개관(槪觀)
위에서 천황이 군주(君主)인가를 살펴보았으며, 천황을 군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긍정하는 견해가 다수의 견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하게도 천황이 원수(元首), 즉 일본의 국가원수인가에 대하여는 일본국헌법에 국가원수에 대한 명문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견해도 다양하다.
현행 일본국헌법 이전의 대일본제국헌법에서는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總攬)」(메이지 §4)한다고 규정하여 국가원수에 대한 문제가 거의 없었다. 군주주의적 입헌군주제가 채용되어 메이지헌법에서 천황은 명실공히 국가의 원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천황제를 채용한 일본국헌법에서는 국가원수와 관련한 명문 규정 자체가 없고, 따라서 이와 관련하여 일본에 국가원수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존재한다면 누구인가, 즉 천황을 일본의 국가원수로 볼 수 있는가, 그리고 천황이 국가원수가 아니라면 일본의 국가원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낳게된다.
이러한 문제의 해답은 천황이 군주인가에 대하여 살펴본 것과 같이, 국가원수의 개념적인 징표를 파악하고, 또한 어떠한 개념정의를 취하는 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수의 개념은 군주의 개념 이상으로 역사의 과정에서 변화하여 왔으며, 또한 불명확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학문상의 개념정리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신임장(信任狀)이 있는 경우에 그 발신인, 그리고 수신인은 국가원수라는 국제관례가 있고, 또한 헌법해서상 천황을 원수로 보는 견해에 따르면 천황의 말이 가지는 가치적 움직임이 정치권력자에 의하여 이용될 수 있다는 반대론자로부터의 강한 우려가 존재하며, 일본의 국가원수의 존재를 둘러싸고 국가원수가 없다는 견해나 애매하다는 견해와 함께 강한 헌법 개정 논쟁의 초점이 되며, 그와 함께 원수의 개념논쟁은 뜨거운 정치적 논쟁의 움직임으로 연장될 수 있다.
다만 국가의 통일성은 그 법인격의 관념에서 인식할 수 있고, 외국에 대하여도 각 국가기관은 각자의 권한범위에서 국가를 대표하며, 반드시 원수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견해에서 국가원수 논쟁은 오늘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25
2) 메이지헌법에서의 원수의 개념유형과 정의
(가) 통치권의 총람자
메이지 헌법 제4조에서 말하는 「원수」는 중국의 고전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는 특히 19세기의 바이에른 주 헌법을 기원으로 하여 독일의 여러 지방 헌법규정에 나타난 「Oberhaupt des Staates」(또는 Staatsoberhaupt)의 번역어이고, 「통치권의 총람자」(주권적 통치자)로서의 군주가 인간의 몸에 비유하면 마치 머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는 국가유기체설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데에는 견해의 다툼이 없다.26
메이지헌법에서의 견해는 이를테면 ① 국가의 활동에 있어서 그 두부(頭部)에 해당하는 작용을 수행하는 것, 즉 국가활동의 본원(本源) 내지는 국가생명의 두뇌, ② 모든 국가권력을 체현(體現)하여 이를 대표하는 것 등 그 표현은 다소간에 차이가 있을 지라도 모두 제4조에서의 「원수」는 천황이 「통치권의 총람자」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결국 「통치권의 총람자」라는 뜻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원수」를 「통치권의 총람자」로 해석한다면 이 「원수」 규정은 헌법상 무용한 필요없는 문자27라거나 「이 말 없이도 천황의 법상의 지위에 하등 영향이 없다」28는 등의 견해가 있기도 하다.
(나) 최고의 국가기관
제4조의 「원수」의 해석으로 단순히 천황이 통치권의 총람자라는 것을 비유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동시에 「천황이 국가를 초월한 지위를 가진 것이 아니라 국가에 존재하는 그 구성분자」라는 것, 즉 천황이 국가의 기관이며 최고의 국가기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29
(다) 행정의 수장
「원수」의 어원인 「Staatsoberhaupt」는 즉 국가유기체설에서 갈라져 새로운 개념 내용을 포함하게 되었다. G. 옐리네크는 그 사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국가의 지도적 직무로서의 정부의 의미의 승인은 그에 의한 각국에 있어서 정부의 최고기관을 국가원수로 칭하는 표현을 낳았다. 민주주의 공화국에서조차 이 표현이 적당하게 되었다.」30
「Staatsoberhaupt」 또는 「Staatshaupt」에 이러한 새로운 개념이 있는 것은 메이지헌법 하의 여러 학자에 의하여도 곧 알려졌다. 일례로 「국가의 원수의 문자에는 변한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국가의 행정에서도 외부에 대하여 그 간단하지 않은 생활을 대표하는 기관이 없으면 안되고 이러한 기관은 국가의 행정을 총람하는 기관이 된다.」31
(라) 위엄적(威嚴的)·중정적(中正的) 원수
앞의 개념 외에도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국의 군주나 대의제 공화국의 대통령은 적극적인 행정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위엄적·중정적 지위 내지는 무답책적(無答責的) 지위에 있는 「원수」라는 견해도 이 시기에 존재했다.32
3) 현행 헌법에서의 원수의 개념유형과 정의
현행 헌헙에서 「원수」 논쟁에서 개념의 구성은 메이지헌법에서의 여러 견해를 참고하면서도 한층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여러 관점에서 견해들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가) 국가유기체설적 비유의 유지 여부
「원수」 개념은 대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우선 비유를 유지하는 견해로 ① 원수 개념을 가장 순수한 의미, 즉 「주권적 통치자로서의 군주」로 보는 견해와 ② 주권자인가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에 있어서 머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것, 즉 「최고의 국가기관」이 원수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2) 다음으로 원수의 개념내용에서 국가유기체설적 비유를 고집하지 않고 확대하는 견해가 있다. 그 확대 방향에 있어서 ① 주권적 군주만이 아니라 민주국에 있어서 국민도 포함하여 일반적인 주권자를 지칭하는 견해와 ② 비유를 고집하는 견해에서 원수는 비교법적으로 볼 때에 항상 특정권능을 가진데 착안하여, 이러한 권능을 가진 것을 국가의 최고기관이라고 하느냐에 관계없이 원수로 본다. 이 견해에는 ⒜ 「국내적으로는 행정의 수장이며,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국가를 대표하는 권능을 가진 기관」이라는 견해와 ⒝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권능을 가진 기관」을 원수의 개념 내지는 요건으로 드는 견해가 있다.
(나) 실효적 권능을 중시하는 견해와 위엄적 지위를 중시하는 견해
월터 배젓(Walter Bagehot)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국왕을 두고 영국의 국가구조를 ⒜ 국민의 존숭심(尊崇心)을 높여 이를 유지하는 「위엄적 부분」과 ⒝ 사실상 활동하여 지배하는 「실효적 부분」의 두 부분으로 나누고, 국왕은 ⒜의 지위에 수상은 ⒝의 지위에 서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33 권력이 강한 국왕은 일반적으로 ⒜ 위엄적 부분과 ⒝ 실효적 부분의 양면을 가진다. 강대한 권한을 부여받은 공화국의 대통령도 일반적으로 앞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고 볼 것이다.
(1) 여기서 원수는 앞의 양면을 모두 가진 국가기관이라는 견해가 있다.
(2) 또한 국왕의 권능이 형해화된 군주제 국가나 프랑스 제3공화국 및 제4공화국에서는 국왕이나 대통령의 기능의 중심이 ⒜로 옮겨갔으며, 국왕이나 대통령은 국가의 통일적 전체성을 집중적으로 상징하는 지위라는 것이 원수라는 것에 주목하는 견해가 있다. ⒜를 갖춘 국가기관이 원수라는 것이다. 또한 이 견해도 두 견해로 나눌 수 있는데, ① 우선 국왕이나 대통령이 ⒜를 가진 경우 비록 형해화 내지 명목화 된 것이라 할지라도 법적으로 특정한 국정상의 권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므로, 원수의 요건으로 ⒜ 외에 명목화된 ⒝를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② 그러나 원수의 요건으로 명목화된 ⒝도 불요하며, 형식적 국사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며, 오로지 「위엄적, 상징적 기능을 가진 기관」을 원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다) 국내법적 관점과 국제법적 관점
일반적으로 국내법상 원수가 국제법적으로도 원수로 기능하고 취급된다. 따라서 보통 앞의 양 관점을 가지고 구별하는 실익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원수 개념에 있어서 국제법적 관점을 국내법적 관점과 구별하여 생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특히 원수개념이 애매하고, 국내법상 원수의 소재가 논쟁이 되는 때에는 구별 또한 필요할 수 있다. 국제법상 원수의 정의 내지 요건으로는 일반적으로 ⒜ 여러 외국과의 외교적 교섭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여러 기관 가운데 최고의 지위를 가질 것과 ⒝ 이에 비추어 국가의 대외활동의 주요한 활동, 즉 조약의 체결과 외교사절의 파견 및 접수, 선전(宣戰)과 강화(講和) 등을 행할 것, ⒞ 외국에 대하여 외교사절과 같은 치외법권을 가질 것 등이 언급된다.34 단 ⒝의 권한에 대하여 형식적 권한으로 족한가에 대하여는 상술한 바 있다.
4) 천황은 일본의 원수인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수의 개념에 대하여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이를 실제로 일본의 국가원수는 누구인가의 문제에 적용하더라도 견해는 다양하다.
(가) 원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
앞에서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살펴본 원수의 개념정의 가운데 (가)에서는 (1) - ②의 견해 또는 (2) - ② - ⒜의 견해, (나)에서는 (1)이나 (2) - ①의 견해가 많다. 그리고 일본국헌법에서는 이러한 견해에 따른 원수개념을 충족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이들 견해를 취하는 한 일본에는 원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35
(나) 천황이 원수라는 견해
(가)에서는 (1) - ②의 견해 또는 (2) - ② - ⒝의 견해, (나)에서는 (2) - ②의 견해를 취하는 경우에는 천황이 원수가 될 수 있다. 이 견해는 원수의 개념을 역사적 흐름의 선상에서 찾고, 또한 가변적인 것임을 강조한다.36 또한 천황을 「준원수적(準元首的) 성격을 가진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37
(다) 기타 견해
(가)에서는 (2) - ①의 견해를 취하는 경우 주권자인 국민이 원수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는 없다. (2) - ② - ⒜를 취하고, (나)의 (1)을 취하여 내각이 원수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38 또한 (가)에서 (1) - ② 내지는 (2) - ② - ⒜를 취하고, (나)에서는 (1)을 취하거나 적어도 (2) - ①의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여 그 요건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서 내각총리대신을 드는 견해가 있다.39 천황과 내각총리대신을 함께 드는 견해도 있다.40
(라) 사견
제정시에 현행 헌법 초안이 귀족원에서 심의되던 중에 천황에게 원수의 자격을 명문으로 부여하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찬성을 얻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41
야마다 사부로(山田三良)
이 의미에 있어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천황은 일본국의 원수다. 그렇게 해서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로 제1조를 고치고 싶다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에 여러가지 깊은 이유도 있으시겠으나, 정부는 중의원에 있어서도 또 본원에 있어서도 이 점에 대하여는 단호히 이 문자를 바꿀 생각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니까 나는 강하게 이를 주장할 것은 아닙니다만, 다만 최후에 국무대신, 어떻게든 이를 생각해주시라고 하는 아량을 가질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하는 것 뿐입니다.
가나모리 도쿠지로(金森徳次郎) 국무대신
말하시는 취지는 충분히 요해(了解)를 하였습니다만, 원수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싶다고 하는 희망은 중의원에 있어서도 실은 분명히 강했던 것입니다. …… 요컨대 원수라고 하는 단어는 상식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나라의 소위 주권자인가, 또는 적어도 행정의 수장인가 하는 의미가 아니라면 원수라고 하는 단어는 아마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원수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사 그것이 전후의 관계에서 법률학적으로 여러가지 치밀한 설명을 더하거나, 조문의 규정을 연구하여, 특수한, 의미가 없는 주권자라거나 행정의 수장이라거나 하는, 특수한 의미가 없는 단어가 되고 제한을 하여서, 성립하는 과정에서 법률가는 이러한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만, …… 국민은 이 헌법에 정하여 있는 천황의 어지위(御地位)를 필요 이상으로 권력적으로 생각할 우려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상징이라고 하는 단어에는 앞과 같은 나쁜 연상(連想)이 없는 것입니다.
이 의미에 있어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천황은 일본국의 원수다. 그렇게 해서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로 제1조를 고치고 싶다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에 여러가지 깊은 이유도 있으시겠으나, 정부는 중의원에 있어서도 또 본원에 있어서도 이 점에 대하여는 단호히 이 문자를 바꿀 생각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니까 나는 강하게 이를 주장할 것은 아닙니다만, 다만 최후에 국무대신, 어떻게든 이를 생각해주시라고 하는 아량을 가질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하는 것 뿐입니다.
가나모리 도쿠지로(金森徳次郎) 국무대신
말하시는 취지는 충분히 요해(了解)를 하였습니다만, 원수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싶다고 하는 희망은 중의원에 있어서도 실은 분명히 강했던 것입니다. …… 요컨대 원수라고 하는 단어는 상식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나라의 소위 주권자인가, 또는 적어도 행정의 수장인가 하는 의미가 아니라면 원수라고 하는 단어는 아마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원수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사 그것이 전후의 관계에서 법률학적으로 여러가지 치밀한 설명을 더하거나, 조문의 규정을 연구하여, 특수한, 의미가 없는 주권자라거나 행정의 수장이라거나 하는, 특수한 의미가 없는 단어가 되고 제한을 하여서, 성립하는 과정에서 법률가는 이러한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만, …… 국민은 이 헌법에 정하여 있는 천황의 어지위(御地位)를 필요 이상으로 권력적으로 생각할 우려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상징이라고 하는 단어에는 앞과 같은 나쁜 연상(連想)이 없는 것입니다.
천황을 절대적으로 원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나 천황의 국사행위에 국가기관으로서 원수의 주요한 행위에 버금가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고, 또한 위의 귀족원에서의 논의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원수라는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명백히 천황이 원수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선상에서 천황이 준원수적 성격을 가진다거나, 천황 및 내각총리대신이 그 원수적 성격을 분유(分有)한다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 아닐까.
5. 천황과 상징으로서의 지위
1) 상징이라는 것의 법적 귀결
2) 교육칙어
3) 원호법
4) 국기 및 국가
6. 황위의 계승
1. 권능의 범위
2. 권능의 성질
3. 권능 행사의 요건(내각의 조언과 승인)
4. 천황의 국사행위
1) 내각총리대신의 임명
2) 최고재판소의 장인 재판관의 임명
3) 헌법개정, 법률, 정령 및 조약의 공포
4) 국회의 소집
5) 중의원의 해산
6) 국회의원의 총선거의 시행의 공시
7) 국무대신과 법률이 정하는 기타 관리의 임면 및 전권위임장 및 대사와 공사의 신임장의 인증
8) 대사, 특사, 감형, 형의 집행의 면제 및 복권의 인증
9) 영전의 수여
10)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의 외교 문서의 인증
11) 외국의 대사 및 공사의 접수
12) 의식
5. 천황의 「상징으로서의 행위」의 허용성
6. 권능의 대행
1) 섭정
2) 국사행위의 위임
1. 황실재산의 국가 귀속
2. 황실경비
1) 내정비
2) 궁정비
3) 황족비
3. 황실의 재산수수의 제한
- 마쓰이 시게노리(松井茂記), 『일본국헌법』(日本国憲法, 제3판), 유히카쿠(有斐閣), 2007년, 260쪽. [본문으로]
- 1868년(메이지 원년) 4월 6일에 메이지 천황이 발표한 메이지 정부의 기본방침. [본문으로]
- 구보타 기누코(久保田きぬ子), 「상징의 지위」(象徵の地位), 『헌법의 쟁점』(憲法の争点, 신판) : 쥬리스트(ジュリスト) 법률학의 쟁점 시리즈(法律学の争点シリーズ) 2, 1985년. [본문으로]
- 원문에서는 「the Crow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국내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이를 왕관(王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the Crown」이라는 표현을 감안한다면 왕관이라기보다는 왕위(王位) 또는 국왕(國王, 왕) 등이 더욱 적합하지 않을까. 실력이 짧아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문헌 여럿이 왕위(王位)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여 국왕으로 표현하였다. 지적을 바람. [본문으로]
- 상징의 두 가지 예시는 아시베 노부요시(芦部信喜) 저, 다카하시 가즈유키(高橋和之) 보정, 『헌법』(憲法, 제4판), 이와나미쇼텐, 2007년, 45쪽. 을 참조. [본문으로]
- 구보타 기누코, 전게논문. [본문으로]
- 같은 견해로 마쓰이 시게노리, 전게서, 261쪽. [본문으로]
- 마쓰이 시게노리, 전게서, 261쪽. [본문으로]
- 아시베 노부요시, 전게서, 45~46쪽. [본문으로]
- 구보타 기누코, 전게논문. [본문으로]
- 미야자와 도시요시(宮沢俊義), 『헌법』(憲法, 제5판), 유히카쿠, 1956년, 10쪽.; 칼 뢰벤슈타인(Karl Loewenstein), 『Political Power and the Governmental Process』, 시카고대학 출판부, 1957년, 139쪽. [본문으로]
- 에하라 다케루(榎原猛), 『군주제의 비교헌법학적 연구』(君主制の比較憲法学的硏究), 유신도(有信堂), 1969년, 5쪽 이하. [본문으로]
- G. 옐리네크(Georg Jellinek), 『일반국가학』(Allgemeine Staatslehre), 3 Aufl., 1922, S.661 ff. [본문으로]
- 호즈미 야쓰카, 『헌법제요』(憲法提要), 유히카쿠, 1910년, 29쪽 이하.; 우에스기 신키치(上杉愼吉), 『신고헌법술의』(新稿憲法述義), 유히카쿠, 1924년, 75쪽 이하. [본문으로]
- 미노베 다쓰키치, 『일본국법학 상권상』(日本国法学 上券上), 유히카쿠, 1907년, 117쪽 이하.; 우카이 노부시게(鵜飼信成), 『헌법』(憲法, 신판), 고분도(弘文堂), 1968년, 11쪽 이하. [본문으로]
- G. 옐리네크, 전게서, S. 702f. [본문으로]
- 콘라드 보른하크(Conrad Bornhak), 독일 국법의 기초(Grundriß des Deutschen Staatsrechts). [본문으로]
- 미야자와 도시요시, 전게서, 197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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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부키 요시토(尾吹善人), 『일본헌법 - 학설과 판례』(日本憲法ー学説と判例), 보쿠타쿠샤(木鐸社), 1990년, 39~40쪽. [본문으로]
- 미노베 다쓰키치, 『일본국헌법원론』(日本国憲法原論), 유히카쿠, 1948년, 224쪽. [본문으로]
- 최판(最判:최고재판소 판결) 헤이세이 원년 (行ツ) 제126호, 헤이세이 원년(1989년) 11월 20일 제2소법정판결·민집 43권 10호 1160항. [본문으로]
- 이토 마사미(伊藤正己), 『헌법』(憲法, 신판), 고분도, 1990년, 135쪽.; 고지마 가즈시(小嶋和司), 『헌법개관』(憲法概観, 3판), 유히카쿠, 1986년, 104쪽 및 328쪽.; 오부키 요시토, 『기초헌법』(基礎憲法, 8판), 도쿄법경학원출판(東京法経学院出版), 1987년, 63쪽.; 사토 고지(佐藤幸治), 『헌법』(憲法, 신판), 세이린쇼인(青林書院), 1990년, 224쪽.; 미노베 다쓰키치, 『신헌법축조해설』(新憲法逐条解説, 증보판), 27쪽.; 사토 이사오, 『일본국헌법개설』(日本国憲法概説, 전정신판), 가쿠요쇼보(学陽書房), 1974년, 271쪽.; 에하라 다케루, 전게서, 633쪽.; 아시베 노부요시(다카하시 가즈유키 보정), 전게서, 47쪽.; 고바야시 나오키(小林直木), 『헌법강의 상』(憲法講義 上, 개정판), 도쿄대학출판회, 1975년, 142쪽. [본문으로]
- 마쓰이 시게노리, 전게서, 261~262쪽. [본문으로]
- 사토 고지, 전게서, 178쪽.; 가쿠도 도요하루(覚道豊治), 『헌법』(憲法), 미네르바쇼보(ミネルヴァ書房), 1973년, 66쪽. [본문으로]
- 에하라 다케루, 「원수의 개념」(元首の概念), 『헌법의 쟁점』(憲法の争点, 신판) : 쥬리스트(ジュリスト) 법률학의 쟁점 시리즈(法律学の争点シリーズ) 2, 1985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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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옐리네크, 전게서, S.619. [본문으로]
- 이치무라 미쓰에, 전게서 287쪽. 외에도 사사키 소이치, 전게서. 등에서도 비슷한 해설이 있다. [본문으로]
- 모리구치 시게하루(森口繁治), 『헌정의 원리와 그 운용』(憲政の原理と其運用), 가이조사(改造社), 1929년, 81쪽 이하. [본문으로]
- 에하라 다케루, 전게서, 324쪽 이하.를 참조. [본문으로]
- 쓰네토 교(恒藤恭), 「우리나라에는 원수가 존재하는가」(我国には元首が存在するか), 『계간법률학』(季刊法律学) 제10호, 계간법률학간행회, 유히카쿠, 44쪽 이하.; 헌법조사회(憲法調査会) 제3위원회, 『헌법운용의 실제에 대한 조사보고서 - 천황전쟁방기』(憲法運用の実際についての調査報告書 - 天皇戦争放棄), 대장성인쇄국, 1964년, 79쪽 이하 참조. [본문으로]
- 미야자와 도시요시, 『헌법』(憲法, 개정판), 유히카쿠, 1956년, 181쪽.; 가쿠도 도요하루, 전게서, 65쪽 이하. [본문으로]
- 이토 마사미, 『헌법』(憲法), 1982년, 고분도, 134쪽. [본문으로]
- 고바야시 나오키, 전게서, 144쪽. [본문으로]
- 노무라 게이조(野村敬造), 『헌법요설』(憲法要説), 1960년, 187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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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베 노부요시(다카하시 가즈유키 보정), 전게서, 47-48쪽. [본문으로]
- 최고법규로서의 헌법의 방향에 관한 조사소위원회(最高法規としての憲法のあり方に関する調査小委員会), 상징천황제에 관한 기초적 자료(象徴天皇制に関する基礎的資料), 2003년 2월, 중의원 헌법조사회 사무국, 8쪽. [본문으로]
